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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라이프보스 2020. 8. 17. 19:29

"내면을 다듬는 글쓰기"

참 편리한 세상이다. 웹에서 맞춤법 검사를 누르면 띄어쓰기, 오타가 빠르게 수정된다. 맞춤법 검사를 하고 나면, 글을 다시 읽고 수정한다. 아직은 맞춤법 검사기가 가독성을 높이도록 수정해주거나,  더 좋은 표현까지 찾아봐주진 않는다. 그런데 왠지 AI 맞춤법 검사기가 등장하면 맥락을 이해하고는 더 좋은 표현을 찾아줄 것만 같다. 수고로움으로 느껴질 때가 많은 '글의 맛 살리기' 작업을 머지않을 미래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수행해야겠다. 

 

글을 쓰고 다듬는 과정은 내면 수행에 가까운 것 같다. 내가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고민해보고, 더 나은 표현은 없을까? 내가 이렇게 말한 게 맞을까? 나의 의도와 목적을 계속 되묻게 된다. 저자는 '우리말은 펼쳐쓰는 말이기 때문에, 글의 흐름을 정돈해주는 게 중요하다.'라고 한다. 나에겐 이게 요즘따라 어렵게 느껴진다.  영어 공부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영어식 한국어 표현을 쓸 때가 많다. 가끔은 이게 한국어식 표현인지, 영문식 표현을 한국어로 옮겨놓은 것인지 헷갈린다. 잘 읽히는 글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쓰고, 수정하는 등 '수련'이 필요한 것 같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이 책은 저자에게 교정,교열을 맡겼던 원고 주인인 '함인주'씨가 이메일을 보내면서 시작된다. 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전개된다. 함인주 씨와 주고받는 이메일 내용과 교정 정보가 같이 엮여 있다. 이메일을 읽을 때 에세이 혹은 수능 비문학 지문을 읽는 것만 같다. 함인주 씨와 주고받는 이메일 내용은 질의응답 이상이기  때문이다. 질문에 앞서, 질문에 도달하게 된 과정과 본인의 의견을 상당히 상세하게 밝힌다. 본인이 가진 풍부한 지식, 학문적 내용을 인용하여 설명하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TOO MUCH라는 느낌이 있다.)  왠지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토론을 할 때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상상하게 된다.

 

"문장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책의 다른 갈래는 실용적 맞춤법 교정 정보이다. 이 부분은 흔하게 틀리는 맞춤법과 오용되는 문법을 먼저 설명한다. 이후  어색한 문장을 보여주고, 문장이 어색한 이유와 교정한 문정을 설명한다. 이 파트를 읽을 때 글쓰기 습관을 되짚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무의식 중에 습관적으로 길들여진 표현을 점검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의존명사인 '적, 의, 것, 들'을 과하게 사용한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문장이 길어지거나 뚱뚱해진다. 가독성을 해치는 조사들은 과감하게 쭉쭉 빼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당신은 편리함에 중독되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문장에 의존명사 '적, 의, 것, 들' 외에도 접속사나 혹은 뭉뚱그려 사용하는 표현들이 많다. 상세한 예시는 책을 읽어서 확인해보길 권한다. 대부분의 표현이 일상에서 흔히 쓰이기에, 익숙하지만 틀리다고 생각해보지 못한 표현이기도 하다. 저자는 글을 쓸 때 '굳이'필요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한다. '어떤 표현은 한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되므로 내가 그 편리함의 중독자인인지 살피라고 조언한다.' 이 점을 새기면서 서평을 써야겠다.  

 

"이상한 문장은 없다. 맞춤법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규칙일 뿐"

저자는 맞춤법이란 우리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규칙일 뿐, 이상한 문장은 없다고 말한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 가지각색이듯, 우리가 사용하는 문장은 우리를 닮아있다. 저자가 자신의 일에 대하여 정의 내리는 수필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나도 나름 저자의 역할, 일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교정자'의 역할은 마치, 옷매무새를 정교하게 다듬어주는 일 같다. 비유하자면 모델들이 쇼에 서기 전에, 스태프들이 삼삼오오 옷매무새의 만지면서 선을 하나씩 살리는 것 같달까?  타인의 글을 읽고 교정, 교열하는 것은 '수정'하는 것 이상이다. 저자의 의도를 더욱 분명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도록 적절한 단어를 찾고 글을 다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섬세한 작업이다. 타인의 목적과 의도를 헤아리는 것은 쉽지 않고, '조사'하나라도 문장의 분위기가 바뀌는 우리나라 말을 다루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제3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장인"

나에게 '장인'이란 한 분야에서 축적된 경험을 통해  제3의 시야를 갖는 사람이다. 이 책의 묘미는 ‘문장 교정’이라는 직업을 가진 작가가 그의 시선으로 우리의 일상과 인생을 말하는 부분이다. 무척 새롭게 느껴져서 꼭 소개하고 싶다. 고수, 전문가, 장인은 비슷해 보이는 단어지만 묘한 어감 차이가 있다. 특히나 장인은 이론, 기술의 경지를 모두 통달하여 이마에 제3의 눈이 탁 열리는 사람들 같다. 그 제3의 눈으로 세상을 읽기 때문이다. 저자가 우연히 본 일상을 ‘아주 긴 문장’이라고 이야 가 하는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

예전에는 담배를 피우고 자판기 커피를 습관처럼  마시느라 수시로 도서관 계단을 오르내렸지만 담배도 끊고 인스턴트커피도 끊은 뒤로는 운동 삼아 오르내린다. 나선형으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 건물 밖으로 나가면 또 계단이 나온다. 그 계단에 앉으면 낮은 지붕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인근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맞은편 양옥집 지붕에서 고양이 가족이  슬금슬금 내려오고 건너편 상가에서는 할머니가 바람에 흔들리며 말라 가는 빨래를 걷고  아래로는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힘겹게 언덕을 오르며 귀가를 두는 시간, 어스름이 내릴 그  무렵이면 그 모든 풍경이 마치 길고 긴 문장처럼 느꼈져다. 주어가 있고 서술어가 있으며 체언을 꾸미는 관형사와 용언을 꾸미는 부사까지 모두 갖춘 아주 긴 문장. 나는 생각했다. 저 문장은 얼마나 이상한 문장일까.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 얼마나 이상한 삶들이 얼마나 이상한 내용을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한 문장일까. 그리고 만일 저 길고 긴 문장을 손본다면 어떤 표기가 맞고 어떤 표기가 렇지 않았는지 어떻게 알 수 을까. 어떤 표현이 어색하고 어떤 표현이 그렇지 않은지는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들어내거나 고치거나 다듬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마치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는 쓰레기들일까. 아니면 빨랫줄에서 떨어져 흙이 묻은 빨래들일까. 그것도 아니면 제 어미 쫓아가지 못하고 뒤처져 울고 있는 고양이 새끼 일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내가 앉아 있는 곳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한 데처럼 여겨졌다.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한데. 그 순간 마치 길고 긴 문장에 마침표를 찍듯 하늘에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져 내 발밑까지 굴러왔다. 자세히 보니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이었다. 마침표처럼 동그랗고 단단한 감.

맞춤법 교정을 위해 읽어볼 만한 '실용서적'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문서적'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 함인주씨와의 이메일 문답은 지적인 대화라서 흥미로웠다. 누군가와 저렇게 대화해볼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작정 아무 책이나 읽고 싶을 때, 책장에서 다시 읽어도 부담 없는 그런 실용 서적이었다.